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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낙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쌓아두고 몇 권을 골라 읽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실상 내가 책을 '잘' 읽지는 못한다.
빨리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언제나 있고,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속독이야말로 최고의 재주지, 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매번 의식하곤 한다.
하루라도 종잇장을 넘기지 않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느낌이 드는 정도의 중독이다.

그런 용도로 책을 읽는다면, 그것에 의지한다면 그것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겠느냐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님의 지당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나는 크리슈나무르티를 비롯, 각종의 책들을 읽어내리지 않으면 마음을 편안히 정돈하고 잠에 청할 수가 없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직감한 후에도 나는 언어에 대한 집착을 좀처럼 떼어놓지 못한다. 한계라는 것이 포기이거나 좌절의 의미는 아니지만, 끝이 보이는 일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언제고 무지한채라고 인정하고 싶었고 그 상태에서 달릴 수 있는 곳까지 달리다가, 날 수 있는 곳까지 날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차원에 부딪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껏 내가 머물러왔던 그 우물에서 (언제까지고) 기웃거리기를 선택해버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도 같다.
 

예술이 왜 특별한 것으로 취급되는지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예술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접근금지 선같은 그 뉘앙스가 때로 나를 거기에 붙잡아두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벗어나고픈 올가미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일찍이 깨닫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미지에 사로잡힌 인간이 어쩌면 내가 아닐는지.
예술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가, 그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이기는 한건가.
왜 그렇게 고귀하고 우아하게 내 귀에는 들리는 걸까.
왜 예술의 어의에 관해 솔직한 사람은 그토록 적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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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어릴 적 호텔의 아일에서 얼음을 가지러 갔을 때 마주쳤던 ― 들릴 듯 말 듯 잔잔하게 퍼지는 클래식 음악소리 그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내가 속해있지 않지만 세상 어딘가에 존재해왔던 그 분위기를 찾고 싶어 내 방을, 거실을, 어느 공간이든 그렇게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던 것 같다. 내 기억속에 한번 자리한 이미지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by 맑은 | 2008/09/25 01:17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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